Episode of June 11, 2016
인사동 쌈지길
골목마다 이야기를 담고있는 정감 있는 서울의 인사동에 약 500m의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2004년 12월 18일 문을 연 <쌈지길>은 공예품전문 쇼핑몰로서 “인사동 속의 새로운 인사동”으로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한국의 인간문화재가 만든 최고급의 전통공예품과 현대공예작품, 그리고 한국의 멋이 풍기는 디자인 제품들을 쌈지길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대표적인 한국 음식인 ‘전주비빔밥’, ‘불고기’, ‘빈대떡’과 한국의 전통차도 맛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쌈지길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오늘 우리가 찾은 곳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수도권에 살고 있어도 서울에 갈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서울 구경 한번 해보자고 집을 나섰다. 인사동을 시작으로 청계천 → 광장시장 → 동대문으로 해서 돌아오는 코스로 움직이기로 했다. 평소 지하철도 거의 탈 일이 없어 지하철도 한번 타보자 싶어 차를 두고 지하철로 이동했다.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인사동이다. 인사동에 도착하자마자 기념 촬영을 한다. 그녀는 외국인 관광객 같은 포즈로 사진을 담는다.
인사동답게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나는 아무 의미 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조금 특이한게 보이면 열심히 셔터를 눌러본다.
도로명 주소 안내판에 인사동이라고 크게 적혀있다. 이 곳이 인사동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가 요즘 핫하다는 쌈지길이다. 인터넷에서만 봤던 곳을 직접 와보니 신기하다. 역시 지방 출신인걸 못 숨긴다. 오늘 그녀는 서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잔뜩 멋을 내고 왔다. 이렇게 안해도 서울사람 처럼 보인다.
여기가 요즘 핫한 쌈지길이다. 그냥 나선형으로 된 복도식 건물이다.
계단을 오르기 전 사진 몇장 담아본다.
건물 내부는 대충 이런 느낌이다.
건물 안 통로에서 또 사진 몇 장 담아본다.
이런 아기자기한 수공예품도 진열되어 있다.
여기는 연인들을 위한 공간인가 보다. 사랑의 담장 이라 적혀있다. 밑으로 더 내려가면 이런 간판도 나온다. 놀이 동산도 아니고 놀이똥산이다.
각자의 사연이 담긴 메모가 잔뜩 매달려 있다.
여기저기 보이는 조형물과 함께 사진을 담아본다.
여기 이렇게 빈티지한 공간도 보인다.
각국의 국기로 디자인된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공간도 있다.
쌈지길을 다 돌아보고 바깥으로 나왔다. 공사 중인 건물 안전펜스 앞에서 모델 포즈로 사진 한 장 담아본다. 어느 가게에 김정은 모습의 캐리커처가 걸려있다.
거리 곳곳에 보이는 한복 입은 어여쁜 처자들이 이 곳이 인사동인걸 알려준다. 한복 입은 모습이 정말 이뻐 보인다.
"머시 걱정인가" 여기는 또 뭐 하는 곳이지??
중간중간에 이런 오래된 느낌이 나는 골목도 보이는데 모두 음식점인 것 같다.
휴일이라 그런지 정말 사람이 많다.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는 이쁜 가게도 정말 많다.
만지지 말라는 안내문구가 적혀있는 화분이 있다. 그래 이쁜 건 눈으로만 봐야지...
인사동에 왔으니 기념품도 하나 사야지? 전통 문양이 그려진 부채 하나 구매했다.
한화불꽃길
인사동을 뒤로하고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청계천!! 청계천으로 내려가며 사진 한 장 담는다. 삼일교라 적혀있는 다리 아래에서도 사진 한 장 담는다.
장시간 걸었더니 발이 많이 아프다. 잠시 신발을 벗어던지고 청계천에 발을 담근다. 이 정도에 청계천이 오염되지는 않겠지??
물속에 잉어도 헤엄치고 식물도 많이 심어져 있다.
이렇게 중간중간 징검다리도 놓여 있다.
참새들도 열심히 먹이 활동 중이다.
인공적으로 복원한 하천이지만 이렇게 생물이 살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어 보기 좋았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진다. 광고 아님!! 그녀가 나에게 커피한잔을 건낸다. 오빠 커피 한잔해~!!
광장시장
서울 종로4·5가와 청계천 사이에 있는 도·소매 시장이다. 조선 후기에는 이현(梨峴) 또는 배오개(배우개) 장시(場市)라 불렸으며, 서소문 밖 칠패(七牌; 현재의 남대문시장), 종로의 종루(鐘樓) 시전과 함께 조선 후기 한양의 3대 장으로 꼽혔다. 이현(배오개)은 ‘배 고개’라는 뜻으로, 과거에 배나무가 많은 고개였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1905년 7월 한성부로부터 시장개설 허가를 받아 ‘동대문시장’으로 정식 개설되었다. 같은 해 11월 종로의 거상(巨商) 박승직(朴承稷, 두산그룹 창업주)을 비롯해 장두현(張斗鉉), 최인성(崔仁成), 김한규(金漢奎) 등이 동대문시장(현 광장시장)의 운영 및 관리하기 위하여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조선 상인들이 축적한 토착 민족자본에 의해 상권이 형성된 데다 광장주식회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장의 경영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족시장의 명목을 유지해 갔다.
광장주식회사 설립 이후부터 '광장시장'이라고도 불리기 시작하여 오랫동안 '광장시장'과 '동대문시장'이라는 명칭이 혼용되었다. 1960년대 이후 동대문 일대가 의류시장으로 변모하고 특히 1970년 말 동대문종합시장이 문을 열면서부터 동대문시장은 종로5·6가 주변의 상가 전체를 가리키고, 광장시장은 구(舊) 동대문시장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원래 광교(廣橋)와 장교(長橋) 사이에 시장을 조성하려던 계획으로부터 ‘광장(廣長)’이라는 명칭이 비롯되었으나 계획과 달리 이현(배오개) 터에 시장이 자리 잡으면서 ‘널리 모아 간직한다’는 뜻의 ‘광장(廣藏)’으로 한자어가 변했다고 전해진다.
시장 개설 초기에 주로 거래되던 품목은 미곡, 어류, 과일, 잡화 등이었고, 미곡과 잡곡이 많이 팔렸다고 한다. 1911년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점포를 보유한 상인은 총 98명으로, 미곡상 31명, 어물상 12명, 과물상(과일상) 15명, 잡화상 15명, 기타 2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22년 시장거래액 조사에서는 농산물이 총거래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동란 후 서울지구 상공실태’에 따르면 한국전쟁 직후 1일 거래액은 약 3억으로 남대문시장의 3배 규모였다. 또 청과류와 의류가 주로 거래되고, 전쟁 전에 비해 도매상이 감소하고 소매상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전쟁 때 시장 건물이 모두 파괴되었다가 피난민들의 군수품과 외제품 암거래를 포함한 생활필수품 거래가 활기를 띠면서 시장 기능이 회복되었다. 1957~1959년 시장의 중심 건물들이 차례로 세워졌으며,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이르러 직물과 의류 전문시장으로 탈바꿈하였으며, 1960~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침체기로 접어들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먹자골목의 먹을거리로 유명세를 타고, 점차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면서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대지면적 약 4만 3,000㎡, 건물면적 약 8만 5,000㎡, 점포수 약 5,000개 규모이며, 종사자 수는 약 2만 명에 이른다. 주거래 품목은 한복, 직물(주단, 포목 등), 의류, 침구, 수예·자수품, 커튼류, 폐백용품이다. 그밖에 농수산품, 축산품, 반찬류 등의 식품과 각종 공산품을 취급한다. 명소는 먹자골목이며, 명물은 마약김밥, 빈대떡, 육회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장시장 [Kwangjang market, 廣藏市場] (두산백과)
청계천을 잠시 걷다 도착한 광장시장!! 장시간 걸어서 그런지 체력이 완전 방전 되었다. 정신없이 먹방만 했다. 마약김밥, 빈대떡, 순대 이것저것 먹방만 하고 나왔다.
동대문으로 가는 길에 만난 전태일 열사 동상이 있는 전태일 다리가 나온다. 바닥에는 그에게 전하는 여러 사람들의 추모의 글귀가 붙어있다.
동대문 패션타운
드디어 도착한 오늘의 마지막 장소 동대문 패션거리!! 하루 종일 걷고 불편한 복장 때문에 힘들어하는 평생 모델을 위해 시원하고 간편한 옷을 몇 벌 사기 위해 폭풍 쇼핑을 시작한다.
한결 가벼워진 복장으로 쇼핑몰을 나왔다. 쇼핑몰 입구에서 사진 한 장 담는다. 커다란 현수막에 송중기 사진이랑 중국어로 뭐라고 적혀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설명은 생략한다.
동대문 패션거리에 설치되어있는 여러 가지 조형물들의 모습이다.
쇼핑을 마치고 전철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사진 몇 장 담는다.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청계천 수상패션쇼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전문 모델과 방청객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시장 야경의 모습이다.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하는 중이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 서울은 어딜 가도 넘치는 사람들로 불편한 게 더 많은 도시다. 오늘 서울구경 실컷 했으니 당분간 서울구경은 더 안 해도 될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많은 추억 담아간다. 피곤한 몸을 전철에 싣고 집으로 향해간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월여행 - 선암마을 한반도지형, 선돌, 청령포 (0) | 2020.09.27 |
---|---|
탄도항과 궁평항으로 떠난 시그마 아트 20mm f1.4 TEST 출사 (0) | 2020.09.27 |
초여름에 다시찾은 아산 외암민속마을에서 (0) | 2020.09.26 |
안산 가볼만한곳 대부바다향기테마파크 (0) | 2020.09.26 |
그녀와 함께한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과 차이나타운 (0) | 2020.09.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