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담은 세상 이야기

동해안 가볼만한곳 포항 호미곶과 경주 문무대왕릉

by BSDPictures 2020. 11. 1.

Episode of May 17, 2020

 

해돋이 명소 포항 호미곶

 

 

동외곶(冬外串)·장기곶(長鬐串)이라고도 한다. 원래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 하여 장기곶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8년 이후에는 장기갑(長鬐岬)으로 불리다가 1995년 장기곶(長鬐串)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다 2001년 12월 ‘호랑이 꼬리’라는 뜻의 호미곶(虎尾串)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꾸었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곳을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하였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내륙 쪽은 해발고도 200m의 산지지만, 대보리(大甫里)·구만리(九萬里) 사이에 어촌이 발달해 있고 약간의 농경지도 펼쳐진다. 해안에서 2km까지는 수심 약 40m 정도이며 대보리에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미곶 [虎尾串] (두산백과)

 

 

주말을 맞아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날 찾은 곳은 우리나라 호랑이 모양 지도에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호미곶이다.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한 곳인데 커다란 손 모양의 조형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주차를 하고 들어서면 넓은 광장이 나오고 광장 한가운데 손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이 나타난다.

 

 

육지 쪽에 이 조형물과 바다 쪽에 조형물이 손바닥이 마주하는 모양으로 세워져있다. 해마다 새로운 해가 떠오를 때 이 손 모양의 조형물 위로 떠올라 장관을 연출한다.

 

 

광장 한편에 연오랑 세오녀상이 있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 연오랑 세오녀상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해맞이광장.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다는 신라시대의 전설‘연오랑 세오녀’이야기의 배경이 이곳 호미곶이다. 이곳에서 바위가 솟아올라 연오랑을 태웠다고 전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미곶 [虎尾串] (두산백과)

천천히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 본다. 이 날은 바람이 엄청 불었다. 우리 아내의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휘날리고 있다.

 

 

기온은 상당히 높은 날이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 약간 춥게 느껴진다.

 

 

해안길을 따라 깡통 열차가 운행 중이다.

 

 

이 주변을 가볍게 돌아볼 수 있는 열차인듯싶다.

 

 

저 앞에 바닷가 쪽 손바닥 조형물이 보인다.

 

 

손가락 끝에 갈매기들이 몇 마리씩 앉아 있곤 한데 이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아무것도 앉아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잽싸게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

 

 

손바닥 조형물과 함께 사진 한 장 담는다.

 

 

세월의 흔적인지 10년 전에 왔을 때 보다 색이 많이 바랜 것 같다.

 

 

바닷가 쪽으로 나있는 산책로가 보인다.

 

 

나무 데크로된 산책로 쪽으로 걸어가 본다.

 

 

바닷가에 가까워 질수록 바람이 더 거세게 불어온다.

 

 

우리 준서는 바다가 신기한지 계속 바라보고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똑바로 걷기도 힘들다.

 

 

준서가 추울까 봐 점퍼에 달린 모자를 씌워준다. 우리 준서는 세찬 바람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다.

 

 

산책로 건너편으로 손바닥 조형물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낙지 모양 조형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오늘은 머리카락은 지못미다!!

 

 

우리 준서는 대견하게도 바람을 잘 버텨주고 있다.

 

 

"호미곶 바다계단길"에 관한 설명이 적혀있다.

 

 

산책로 따라 해안가를 한번 돌아보고 싶었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패스하기로 한다.

 

 

손바닥 조형물을 뒤편에서 본모습이다.

 

 

바닷물도 심하게 넘실거린다.

 

 

낙지인지 문어인지 조형물이 보인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도저히 안 되겠다.

 

 

다시 광장 쪽으로 걸어간다.

 

 

광장 쪽으로 오니 바람이 조금 약해진다.

 

 

바닷가 쪽과는 달리 광장 쪽은 바람이 덜 부는 것 같다.

 

 

안전한 곳으로 와서 준서도 잠시 뛰어놀게 해 준다.

 

 

우선 바람에 날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아 준다.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나자마자 우리 준서는 어디론가 신나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다른 아이가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것 보고 잠시 멈춘다.

 

 

비눗방울을 쳐다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신라 문무대왕의 왕릉이 있는 경주 대왕암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그리하여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대왕암은 육지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바다에 있다.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약간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이동하여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을 큰 바위(화강암)가 둘러 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어 주변 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연적으로 물길이 나 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물길이난 가운데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바닷물은 파도와 함께 동쪽 물길을 따라 중앙 공간으로 흘러들어와 서쪽 물길을 통해 빠져 나간다. 바닷물이 물길을 따라 중앙으로 진입할 때 파도가 소멸되기 때문에 중앙의 물은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잔잔하며, 물 높이는 중앙의 큰 바위를 살짝 덮을 정도를 항상 유지한다. 대석의 안치 방법과 유골의 수장 여부에 대하여 그 동안 많은 의문점이 있었다. 2001년 3월 한 방송사에서 역사연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초음파 탐지기 등을 이용하여 바위의 조직과 바위의 내부 및 수면하를 조사한 결과, 대왕암 내부 또는 아래에 유골이나 부장품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육지에 '낭산'이라고 하는 신성시되는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능지탑'이라고 불리는 탑이 있다. 연구 결과 문무왕의 시신은 이 능지탑에서 화장되어 대왕암 주변에 산골하고, 대왕암 주변 바위에서 절리된 큰 바위를 중앙의 빈 공터에 남북으로 안치시켜 장례를 지낸 형식적 절차를 가짐으로써 무덤(왕릉)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왕암의 네 방향으로 수로를 낸 것은 석가의 사리를 안치한 탑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의 한 설화에, 문무왕이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에게 만파식적(万波息笛)이라는 피리를 주어, 문무왕이 죽은 후 바다의 용이 되었다가, 만파식적을 불면 용이 나타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들 신문왕은 바다에서 1.5km 떨어진 동해변에 부왕을 기리는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절의 금당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설계하였다. 이는 용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감은사의 동쪽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다. 이곳은 대왕암을 정면으로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인데, 이곳에 이견대(利見臺)를 짓고 신문왕은 이곳에 수시로 와서 대왕암을 망배(望拜)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주 문무대왕릉 [慶州 文武大王陵] (두산백과)

그렇게 호미곶을 뒤로하고 바다를 보며 경주 쪽으로 내려왔다. 바다를 보며 내려오다 한 바닷가에 잠시 멈춰 섰다.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 먹고 바닷가로 다시 나왔다. 저 앞에 보이는 곳이 대왕암이라고 불리는 신라 문무대왕릉이다.

 

 

여기 바닷가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다.

 

 

몽돌로 이루어진 넓은 해안이 매력적이다.

 

 

조그만 자갈이 넓게 펼쳐져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다.

 

 

파도가 칠 때마다 몽돌 해수욕장 특유의 자갈에서 물 빠지는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동해답게 탁 트인 바다와 수평선이 눈을 맑게 해 준다.

 

 

우리 준서는 좋아하는 돌멩이가 많아서 그런지 신나게 놀고 있다.

 

 

그런 준서를 아내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가족단위로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해마다 해돋이를 보러 왔다 늘어선 차량 행렬을 보며 발길을 돌렸던 호미곶!! 어느새 10년 만에 다시 찾았다. 유명세 덕분인지 갈수록 여느 관광지와 비슷해진다는 느낌이며 찾는 사람도 예전보다 더 많아진 느낌이다. 어느 관광지나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은 다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유명 관광지보다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을 많이 찾아봐야겠다. 오늘도 가족과 함께 좋은 추억 많이 담아간다.

 

댓글